수업, 철학과 만나다
수업, 배움을 넘어 삶으로
교사 류창기 (역동초등학교)
코로나19가 남긴 과제
코로나19 초기에 학교교육을 향해 쏟아진 비난을 기억합니다.
그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이건 온라인 수업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방치하실 예정입니까?’라는 제목으로 3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이라고 밝힌 한 청원자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 글에는 “공교육과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버렸다.”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어요. 이 청원은 나흘 만에 2만 명의 동의를 얻었는데, 팬데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교육 현실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전면 등교수업으로 전환하고 나서야 들끓던 비난 여론이 차츰 수그러들었지요. 정말 학교가 그랬느냐, 아니었냐는 사실보다 중요히 다루어야 할 건 코로나 상황에서 경험한 학교교육의 한계와 변화입니다.
학교 밖에서 볼 때는 학교교육이 잘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는 내용과 방식을 달리하며 끊임없이 변합니다. 지금도 팬데믹 상황에서 배움의 장을 열기 위해 학교는 변화의 진통을 심하게 겪는 중이니까요.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학습자 주도성’입니다. 수업에서 학습자 주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원격수업을 통하여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교사가 말을 걸어도 학생이 아무 말이 없거나 화면마저 꺼버릴 때, 다른 창을 열어 동영상을 보며 키득거리고 웃거나 게임하는 모습이 빤히 보일 때, 카메라를 피해 몰래 무언가를 먹을때, 교사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좌절했던 경험, 다들 있을 겁니다. 수업에 접속할 수 있는 선택권이 학생의 손에 쥐어지면서 학생의 결정에 따라 배움의 장이 열리고 닫힐 수도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었지요. 수업에서 학습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과는 별도로, 바람직한 삶의 방향과 선택에 따른 책임 있는 삶의 태도를 길러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배우게 하려면 교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학습자 주도성이 강조되는 맥락에서 교사는 어떤 존재일까요? 주도성이 학습태도와 방법에 국한되지 않고 삶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교육적으로 보고 관계 맺기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배움을 힘들어하는 학생이나 배우려 하지 않는 학생을 보며 비슷한 질문을 가졌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선생님은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으로 ‘교육적 보기’를 실천하고 계신 것이지요. 예를 들면, 구구단을 외우는 한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길 가던 아주머니에게는 구구단을 외우는 아이쯤으로 보일 테지만 담임교사의 눈에는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수업 시간만 해도 6단을 띄엄띄엄 읊더니 지금은 잘도 외우는걸. 친구들 앞에서는 머뭇대더니 혼자 외울 때 맘이 편한 모양이야.
내일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대일로 점검하는 편이 좋겠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경험도 조금씩 늘려 봐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아주머니와 달리 교사가 아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까닭은 학생의 말과 행동을 교육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교육적으로 본다는 건 단순한 보기와 다르죠.『가르친다는 것의 의미』에서 반 메논(Max van Manen)은 “진정으로 타인을 알기 위해서는 보는 능력과 보이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해요. 교육적으로 보기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교육적 관계 맺기와 연결되죠.
학생이 짓는 표정에서 혼란함과 두려움, 감동과 흥미와 같은 복잡 미묘한 것들을 읽어내고, 교사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거나 어깨를 들썩인다든지 잠시 동안의 침묵으로도 수만 가지 의미를 주고받으며 교육적 관계를 맺습니다. 일반인이 보는 것과 교사가 보는 게 다르고 달라야 하는 이유가 바로 교육적 관계 때문이죠.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든 아니면 이전으로 돌아가든 교사가 놓치면 안 되는 것이 ‘학생들에게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가?’ ‘배움의 과정을 교사가 확인하고 알고 있는가?’입니다. 상황이 달라져도 교육적 관계 맺기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이죠.
삶과 연계한 깊이 있는 학습으로 전환하기
교사가 교육적으로 보고 교육적 관계 맺기에 공을 들여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주도이며, 주도적인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이죠. 진도나가기식 또는 보여주기식 수업으로는 어림도 없고, 교사가 무대를 만들면 학생이 알아서 배운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변화무쌍한 배움을 짚어낼 만큼 충분히 깊거나 충분히 넓거나 충분히 생생하지 않다는 걸 경험한 교사는 결정적인 지점에서 배움 너머에 삶을 발견합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래서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 라는 삶의 질문으로 한 발짝 나아갈 때 배움도 깊어지는 법입니다. 삶과 배움의 순위가 뒤바뀐 세상에서 살다 보니 마치 배우기 위해 삶을 사는 착각에 빠질 때가 종종 있어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배운다는 걸 모두들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배움과 삶이 연결된다는 말은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수업을 통해 경험한 배움이 삶과 조화를 이루고 새로운 배움을 향해 뻗어나가는 경우이죠. 또 하나는 삶의 이야기를 수업으로 끌고 와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입니다.『민주주의와 교육』에서 듀이는 학습은 경험과 사고의 연결로서 어떤 경험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보다는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전자가 앎을 통한 배움이라면 후자는 삶을 통한 배움이죠. 배움에서 출발하여 삶으로 이어지고, 삶에서 시작하여 배움으로 깊어질 때 비로소 실천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습니다.
교육에서 삶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져 OECD Education2030 프로젝트에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사회의 가치를 좋은 삶(well-being)에 둡니다. 교육의 목적은 좋은 삶을 사는데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일이며, 개인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역량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러한 흐름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되어 ‘삶과 연계한 학습’이 교과 교육과정 개발의 지향점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생활 맥락 속에서 학습 내용을 습득, 적용 실천할 수 있게끔 삶과 연계하여 가르치기를 강조하지요.
『삶이 있는 수업』의 필요와 요구는 점차 커지고 있지만 삶과 연계하는 학습이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삶과 연계한 배움의 가치를 몰라서라기보다 삶과 배움 사이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연결하면 좋다는 걸 알아도 어떻게 연결할지 모른다면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배움을 넘어 삶을 잇는 글쓰기
삶과 연계한 깊이 있는 학습법 중에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글을 쓰면, 정말 그러한지, 내가 알거나 모르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지를 깊게 생각합니다. 모호했던 생각도 윤곽이 드러나고 선명해지죠. 글쓰기는 생각을 정확하고 빠르게 표기하는 능력, 주어진 정보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추론하는 능력, 여러 생각을 연결하여 자기 생각을 구성하는 능력, 모두의 언어로 표현하여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릅니다.
앎과 삶을 연결하는 글쓰기는 미래교육에 꼭 필요한 역량입니다.
삶이 글에 배어나려면 글쓰기와 수업을 어떤 식으로 관련 맺게 할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실에서 일어난 삶의 이야기를 수업과 어떻게 연결할지 구상한 후에 글감을 정하여 글을 씁니다.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소리 내어 읽기가 단순해 보여도 실은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저자에서 화자로, 화자에서 청자로, 청자에서 독자가 되는 과정을 두루 경험하죠. 글쓴이가 소리 내어 읽으면 화자가 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청자로 바뀌고,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고치는 저자가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의 말로 쓰는 저자’였다면 소리 내어 읽은 후에는 ‘모두의 말로 쓰는 저자’로 바뀝니다. 그만큼 서로의 글을 읽으며 글쓴이가 무엇을 경험하였고, 과정은 어떠했으며 경험으로 얻게 된 기대나 한계, 그리고 경험을 대하는 삶의 태도까지 알게 됩니다.
‘소리 내어 읽기’는 ‘묻고 답하기’로 이어집니다. ‘네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이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글에서 너도 속상했을 것 같다고 했잖아, 너도 그런 적이 있어?’, ‘그런데, 그 책을 왜 읽게 된 거야?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 친구의 글이 궁금하니 질문이 이어집니다. 글을 다듬고 고치며 삶과 배움을 연결합니다. 우리 안에서 말과 글을 의미 있게 다루면 삶에 힘이 실립니다. 교실에서 일어난 이야기, 모두가 겪고 알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서 배우면 교사는 학생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학생은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간혹 관심을 학생에게 두기보다는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는 교사를 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내 수업 어땠어?’, ‘왜 학생들은 내 말을 듣지 않지?’, ‘이것까지 내가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 하나?’ 등이죠. 반면에 삶에 중심을 두는 교사는 ‘오늘 수연이가 소리를 왜 질렀을까?’, ‘진호가 문제를 이해하려면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처럼 학생을 주목합니다. 학생의 삶을 이야기 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도 없는 것들을 가지고 고민을 합니다.
삶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나눌수록 삶의 주도성이 길러집니다.
서로의 이야기는 새로운 경험으로 만나 우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 흐릅니다. 학생이 쓴 글로 수업하면 배움은 글에 배고 삶으로 이어집니다. 삶의 이야기가 흐르고 깊게 스며들어 모두의 배움으로 배어나지요. 어렵지 않습니다. 한 발짝 물러나 이야기가 흘러가게 놓아 보세요. 삶의 주도성을 어떻게 배우는지 여러분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