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철학과 만나다
가르침과 배움이 상호 의존하는 교실
교사 최봉선 (동암초등학교)
아주 오랫동안 교사로 살다 보니 학생을 보는 관점을 여럿 가지게 되었다. 적극성의 정도나 명랑함같은 단순한 기준으로 보기도 하지만 학습 이론과 뇌과학의 힘을 빌어 복잡한 관점과 지표를 만들어서 관찰하기도 한다. 하루를 여는 아침맞이 시간에는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우주라는 철학적 관점을 마음껏 드러내지만 수업을 설계할 때는 초등 9개 교과 내용이나 기능과 관련 있는 수행 능력, 배경지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학생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라는 압박은 교실을 마치 팝콘 기계처럼 어 수선하게 만든다.
활동중심수업을 하면 배운 내용을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이론은 있는데 정작 학생에게는 내용이 아닌 활동만 남아서 학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학습 내용의 의미와 활동이 거미줄처럼 얽히도록 설계해야 한다. 한 명 한 명 따로 보면 다 예쁜 아이들인데 수업 시간에 진도 챙기랴 평가 챙기랴 자세히 살피기 어렵다. 다양한 교수법과 수업 기술을 갖춰야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이 더 잘 들린다는데 좋아할 시간을 마련하기 힘들다. 방과후면 바쁘게 학원에 가는 아이들과 내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면 능숙해져야 할 텐데 가르치는 일은 더욱 어렵기만 하다. 더욱 복잡해지는 시대에는 사회의 여러 곳에서 경계가 무너진다. 일정한 시기의 교육은 평생 학습으로, 교육의 장소는 학교에서 가상공간으로 확장되고 넘나든다. 수업에서 사용하는 각종 기자재는 수시로 업데이트되어 교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가르침과 배움 또한 경계가 허물어지며 교사와 학생의 전통적인 역할은 역사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가르친 대로 배우지 않고 가르치지 않았는데 배우는 수업을 교사 혼자 해석할 수 없다. 교사와 학생이 상호의존의 관계를 만들어서 학생이 자신의 배움을 스스로 해석하고 설명하도록 학생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교사, 학생의 협력이 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도 교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 이름을 뽑아서 편지 쓰기예요? 저는 편지 쓰는거 싫어해요.”
“어떤 점이 싫어?”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쓰라고 하는데 새로운 내용을 쓰고 싶은데 생각이 안나서 비슷한 내용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싫어요.”
“그래? 오늘은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야겠네”
학생에게 의미가 있는 학습 목표로 수업을 설계해야 배움이 일어난다. 교사가 준비한 학습 목표와 내용이 학생에게 의미가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학생 스스로 주체적 학습자가 되어 자신의 학습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여야 한다. 교사는 학생에게 학습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복잡성이 증가하는 교육상황의 어려움 속에서 학생 성장을 이끌기 위한 방안으로 학습자 주도성 담론은 주목받고 있다. 교사는 가르침의 주체적 학습자로, 학생은 배움의 주체적 학습자로서 상호 의존하는 수업은 서로 성장하도록 만든다. 교사가 학생과 상호의존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서 가져야 할 인식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교사들은 이미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설계해왔고 배움중심 수업에 익숙하지만 원론적인 논의는 현장의 생생함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설계와 실행, 성찰의 순환 고리는 꼬리를 물기에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원칙으로 고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든 교사는 실행연구자로서 자신의 수업을 분석하는 수고를 감당하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동료와 개인적인 연구와 경험으로 가지게 된 몇 가지 관점을 공유하고자한다.
학습의 동기 만들기
인간이 다른 포유류와 다르게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습본능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이의 호기심과 모방 행동은 학습본능이 태생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학습 본능을 교육을 통해 스스로 학습 목표를 만드는 능동적 태도로 성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학습본능이 성장할수록 감소해서 수업마다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여서 교사의 실행연구로 하나씩 밝혀지는 비과학적 오해와 고정관념, 허위의식을 극복해야 한다.
학습의 동기는 단기적 동기와 장기적 동기가 있는데 단기적 동기를 만드는 경쟁이나 보상은 오히려 장기적 동기를 방해하기도 한다. 장기적 동기를 형성하도록 돕는 교육활동으로 빠른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나 작은 성공 경험을 축적하는 프로그램, 메타인지를 기르기 위한 글쓰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선한 교육적 의도가 교육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교사 역시 주체적 학습자로서 수업의 의미를 학생에게 묻는 상호의존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배움의 맥락 만들기
낱낱의 교과와 학습 내용은 학습자에게 총체적으로 축적된다. 학문의 여러 영역을 주관하는 부위가 다르다는 것이 뇌과학의 발달로 밝혀지고 있으나 또한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달한다고 한다. 학습한 내용이나 경험이 학생에게 축적되려면 자기연관성이 높아야 한다. 자기 연관성이란 이미 학습한 내용과의 연결만이 아니라 감각적 경험, 취향과 같이 주의를 끌 만한 요소를 포함한다. 요즘처럼 대부분의 학습 자료를 구입하는 것보다 학생이 시간을 두고 수집 한다거나 수업 내용과 관련 있는 경험을 가정에서 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학부모의 지원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수업 내용과 학생의 일상이 맥락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초등교사는 성장이 활발한 6년간 담임교사가 여러 교과를 지도 해야 한다. 배움의 맥락을 만들기 위해 연임을 하거나 담임교사가 가르쳐야 할 교과 수를 줄여서 학생 지도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학습자로 성장하기 위해 학년 간, 교과 간 내용의 맥락 짓기, 정서적 신체적 발달에 따라 경험의 맥락을 만드는 것을 꼭 고려해야 한다.
긍정적 태도로 비판하기
자기 과잉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국민 모두에게 초기 학습 경험을 제공한 초등교육자로서 모든 사회적 문제에 책임을 느낀다.
학력 저하의 책임은 변명의 여지가 있겠으나 적어도 남 탓과 혐오, 비하를 일삼는 무리에 대한 기사를 보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인간은 원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이 발달했다고 한다. 자극적인 욕이나 흉보기를 쉽게 흉내 내거나 힘겨루기에 흥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일견 타당하게 보인다.
반면에 긍정적 태도는 배워서 생기는 것으로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거나 친구와의 협업을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무비판적 긍정성은 위험한 경우를 초래할 수 있다. 비판적 사유를 통해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다음 학습을 계획하거나 준비하는 주체적 학습자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편지 쓰기가 어땠어요?”
“좀 괜찮았어요.”
우리는 서로 돕는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