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철학과 만나다
미래교육을 열어가는 배움중심수업
교수 이형빈 (가톨릭관동대학교)
배움중심수업, 공교육 정상화의 길을 열다
‘배움중심수업’은 경기혁신교육을 상징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배움중심수업’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모호한 개념을 이해하려면 그 반대 개념을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배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가르침’일까요? 그러나 ‘가르침’과 ‘배움’은 반대말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좋은배움’이 이루어지려면 ‘좋은 가르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교수학습’이라는 개념이 아예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배움의 공동체론의 주창자인 사토 마나부는 ‘공부’의 반대 개념으로 ‘배움’을 제시했습니다. ‘공부’는 수능 문제집 풀이와 같은 무의미한 학습노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부에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이런 공부를 강요받아 왔습니다.
“공부의 세계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에도 부딪치지 않고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는 세계이며 쾌락보다 고통을 존중하고 비판보다는 순종을, 창조보다는 반복을 중시하는 세계였다. 공부의 세계는 장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세계이며, 그 희생의 대가를 재산이나 지위, 권력에서 찾는 세계였다. 또한 공부의 세계는 사람과 사람의 끈을 끊어버리고 경쟁을 부추겨 사람과 사람을 지배와 종속관계로 몰아가는 세계였다. 지금의 아이들은 이러한 공부 세계의 바보스러움을 잘 알고 있다.”
– 사토 마나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중에서
위 인용문 중에 가장 가슴 아픈 구절은 “지금의 아이들은 이러한 공부 세계의 바보스러움을 잘 알고 있다”입니다. 사토 마나부는 ‘바보스러운 공부 세계’의 배경에 ‘동아시아형 교육 모델’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압축적 근대화, 경쟁주의, 산업주의, 국가주의, 공적 의식의 미성숙’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동아시아형 교육 모델’은 ‘한강의 기적’과 같이 놀라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이러한 교육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를 우리 아이들이 이미 간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벌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확신도 없는 시대에,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으로부터의 도주’(수업시간에 잠자기, 등교거부 등)를 택하고, 차라리 ‘유튜버’, ‘건물주’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배움의 세계는 대상이나 타자, 그리고 자기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세계이다. 자기를 내면에서부터 허물어뜨려 세계와 확실한 끈을 엮어가는 세계이다. 고독한 자기성찰을 통해 사람들의 연대를 쌓아올리는 세계이다. 또는 보이지 않는 땅으로 자신을 도약시켜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자신의 것으로 연결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많은 타자와 함께 행복을 탐구해 가는 세계이다.”
– 사토 마나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중에서
진정한 ‘배움’이란 부와 권력, 학벌로 치환되지 않는 의미를 지닙니다. 사토 마나부는 ‘공부’와 ‘배움’의 차이를 ‘만남과 대화의 유무’로 보았습니다. 교과서나 칠판을 넘어 대상 세계와의 만남(활동적 배움), 고립된 자아에서 벗어난 타자와의 만남(협력적 배움), 배운 것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가운데 다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만남(반성적 배움)이 있어야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질집단 속에서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모둠활동’, ‘경청하기, 연결하기, 되돌리기’, ‘흥미롭고 협력적이며 도전적인 점프과제’ 등 배움중심수업의 여러 요소는 이러한 ‘대화와 만남’을 촉진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배움중심수업’은 단순한 ‘학습자중심의 수업’, ‘흥미 위주의 수업’과 다릅니다. ‘타자와의 연대’가 있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성의 극복’이 필요하고, ‘세계와의 만남’이 있기 위해서는 ‘미지를 향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이를 거쳐 ‘더 큰 자아로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러한 과업을 우리의 교실에서 경험하도록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이 우리 교사들의 역할입니다.
배움중심수업의 일차적 목적은 입시교육으로 인해 뒤틀린 수업 -이른바 ‘일제식 수업’- 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수업의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자신의 삶 속에 실천하는 경험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 등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배움중심수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배움중심수업’이라는 담론과 실천이 ‘미래교육’과 만나 한 단계 더 도약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배움중심수업’, 미래교육을 만나다
최근 미래교육과 관련된 담론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미래교육이란 ‘AI, Edu-tech를 활용하는 교육’과 같은 기술공학적 차원의 논의를 훨씬 뛰어넘어야 합니다. 미래교육은 ‘미래사회의 가능성과 위험요소’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어떤 인간을 길러내어, 어떤 사회를 열어가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될 10년 후,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견하기에 미래사회가 마냥 밝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미래의 위험요소를 현실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래교육’은 근대 자본주의적 삶의 패러다임 자체를 성찰하는 토대 위에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OECD에서는 <OECD Education 2030>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살아갈 2030년의 미래사회의 특징을 ‘불확실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였습니다. 기후위기, 사회 불평등, 인구 급감, 그리고 전대미문의 팬데믹 등을 볼 때 이러한 암울한 전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이 연구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전망 속에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웰빙(well-being)’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공’이나 ‘번영’과 같은 물질적 성장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잘 존재하는 것’, ‘좋은 삶’을 추구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OECD Education 2030>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웰빙’을 추구하기 위해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e)’을 길러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변혁적 역량’이란 ‘긴장과 딜레마 조정하기’, ‘책임감 갖기’, ‘새로운 가치 창출하기’ 등의 하위 요소를 토대로 ‘미래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기후위기, 사회양극화, 갈등과 분쟁 등 미래사회의 위험요소를 고려해 볼 때 ‘변혁적 역량’을 미래교육의 핵심으로 설정한 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제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혁적 역량을 위한 교육의 방법론은 학습 전반에 있어 ‘학생의 자기주도성(student’s agency)’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OECD Education 2030>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2022 개정교육과정의 이론적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의 자기주도성’을 통한 ‘변혁적 역량’의 신장,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디지털소양교육 등은 모든 교과교육과정과 창의적 체험활동, 그리고 학교자율과정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미래교육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배움중심수업은 이러한 미래교육의 지향점과 만나야 합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배움중심수업’이 ‘학생 참여형ㆍ협력형 수업’을 특징으로 한다면, ‘미래교육을 열어가는 배움중심수업’은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가는 역량을 기르는 수업’을 지향해야 합니다. 이러한 미래지향적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배움중심수업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 있어 더욱 깊이 있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역량’이란 ‘지식, 기능, 태도 및 가치가 총체적으로 발휘되어 구현 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역량은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실천을 통해 성숙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과 기능을 자신의 삶, 혹은 미래에 부딪히게 될 실제적 맥락(authentic context) 속에 실천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경험을 풍부하게 제공해야 하며, 이 속에서 자신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디지털소양교육 등 ‘변혁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풍부히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교수학습의 형태는 대체로 프로젝트식 수업, 포트폴리오식 평가가 될 것입니다만, 수업의 형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교육과정-수업-평가 전반에 ‘학생주도성(student’s agency)’의 원리가 구현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생주도성이 구현되는 수업이란 학생들의 흥미와 요구를 반영하는 수업을 넘어, 학생의 ‘의견, 선택, 참여, 동기, 주도권, 목적, 자기효능감’이 구현되는 수업, 학습 전반에 있어 학생들의 주체성이 구현되고 자신의 삶과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되는 수업을 의미합니다.
미래교육을 열어가는 배움중심수업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은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책임교육’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보편적 학습설계’입니다. 지금 우리는 심각한 학생수 감소 현상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 태어난 26만명의 학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 학생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기에는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경쟁교육’이 아닌 ‘단 한명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이라는 구호가 매우 절실한 과제로 다가옵니다. 이 시기 배움중심수업은 학생 한명 한명의 잠재력에 따른 개별화 교육과정, 누구도 배움의 걸림돌을 느끼지 않는 보편적 학습설계, 모두의 가능성을 성장시키는 성장중심평가를 전면화해야 합니다.
미래교육을 열어가는 배움중심수업은 이처럼 모든 학생들의 잠재력이 최대한 계발되는 토대 위에 미래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어가는 변혁적 역량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길러가는 수업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미래교육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학생주도성’에 앞서 ‘교사주도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시기에 학생들의 ‘학습격차’ 못지않게 교사들의 ‘수업격차’를 목격했습니다. 어느 순간 ‘수업나눔’의 문화가 시나브로 사라진 학교도 있습니다.
미래교육을 위해서는 원대한 비전과 철학의 공유도 중요하지만, 이와 못지않게 수업나눔 문화를 복원하려는 작은 실천도 매우 소중합니다. 매일의 바쁜 일과 속에서 이러한 실천을 해나가는 선생님들의 노고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