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철학과 만나다
학습자 중심교육, 주도성의 개념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보기
경인교대 교수 온정덕, 사창초 교사 김진원
1. 들어가며
학습자 주도성은 OECD 학습 틀 2030(learning framework 2030)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역량 교육을 도입한 국가들의 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시안 발표에서 학습자 주도성을 ‘학습자가 자신의 삶과 학습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구성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미래사회에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교육부, 2021). 하지만 주도성이라는 용어는 자기주도학습이나 자기조절학습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은 학습자가 스스로 학습 요구의 진단, 학습 목표 설정, 학습을 위한 자원 확인, 적절한 학습 전략을 선택해 실행, 그 결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 주도권을 행사하는 과정으로 정의됩니다(Knowles, 1975). 그리고 자기조절학습은 학습자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사고나 행동, 감정을 활성화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과정(Zimmerman, 2002: 65)으로 정의됩니다.
학습자 주도성과 자기주도학습 혹은 자기조절학습과의 가장 큰 차이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여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이나 자기조절학습은 개인의 내적인 과정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개인 이익에 기반한 행동이 가능합니다. 반면 학습자 주도성의 경우는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며 책임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즉, 학습자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맥락이 매우 중요합니다. 학습자 주도성은 자기 이해적인 차원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연결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세계와의 관계 맺음은 복잡하면서도 총체적입니다.
2. 학습자 주도성의 개념 살펴보기
학습자 주도성은 OECD 학습 틀 2030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OECD 학습자 주도성 개념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한 Leadbeater(2017)는 학습자 주도성이 단순히 능동적이기만 하다고 해서는 충분히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학습자 주도성의 수준을 개인, 협력, 집단의 수준으로 나누고 각 수준의 양상을 설명합니다(<표 1> 참고).
<표1> 학습자 주도성의 수준
수준 | 의미 | 양상 |
개인 | 개인 목적의식을 중심으로 조직된 주체로서의 개인에 초점 | – 목표 설정 – 계획수립 – 장애 및 감정 조절 |
협럭 |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 이해하며, 함께 일할 수 있는 것 | – 연결하는 능력 – 팀으로 협력하여 문제해결 |
집단 | 세계적 수준으로 확장되는 공동체의 일부로 느끼는 것 | – 시스템 사고 – 소속감과 정체감 – 책임감 |
출처: Leadbeater(2017). p.7
개인적 주도성은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의 정체감을 찾고 능력을 개발하는 성장의 여정에서 나타납니다. 어떠한 목적 없이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목표를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목적은 학습자들에게 학습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어주며 동기를 유발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주도성은 협력적이며 집단적 주도성에 필수적으로 기여하는 동시에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가족, 학교, 교사, 친구들이 개인적 주도성에 영향을 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영향력은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합니다. 학생이 학급의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협력적 주도성은 행위 주체가 자신에게 매우 의미 있는 것이 혼자서는 온전하게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시작됩니다. 협력적 주도성을 가진 개인은 능숙한 협력자의 모습을 지닙니다. 이처럼 협력적 수준에서는 나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관계도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나와 팀원 사이의 관계를 넘어 팀원과 다른 팀원 사이의 관계 또한 자신의 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팀워크를 만들고 연결하는 것이 학습자 주도성의 협력적인 수준에서 나타납니다.
그 과정에서 학습자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 있는 작업을 만들어냅니다. 팀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유용하고 새로운 것을 생성합니다.
집단적 주도성은 이보다 더 넓은 공동체, 사회, 세계적인 수준에서 확장되며 이의 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사실 더 넓은 공동체는 개인 행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수준에서 나오는 법이나 문화들은 학습자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전체에 소속감을 느끼며 공유된 성과와 목적을 가지고 영향을 미치기 위해 행위합니다. 환경 문제 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 전 세계에 목소리를 내는 것 등이 이러한 집단적 주도성이 만들어지는 예에 해당합니다.
각각의 수준에서 학습자는 여러 측면의 주도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표 2>참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옳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에서 상호 협력하며 공공선을 위해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주도성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삶에서 볼 수 있는 주도성의 측면은 더 많을 것이며 사회의 변화에 따라 더욱 많은 측면을 가지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각의 수준과 측면은 종적, 횡적으로 서로 만나며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표2> 학습자 주도성의 수준에 따른 측면
개인적 | 협력적 | 집단적 | |
도덕적 주도성 | 약속과 의무를 지키는 것 | 무임승차자와의 협력 및 거래 | 공공재 및 공통의 표준에 대한 집단적 약속 |
창의적 주도성 | 개인적 기술/재능 | 팀과 모임에서 일하는 것 | 집단적 영향력 |
경제적 주도성 | 직업 역할과 훈련 | 사업과 벤처 창출 | 생산적 사업으로서의 학교 |
시민적 주도성 | 권리와 책임 | 상호간 협력적 자체 거버넌스 | 집단적 규범, 규칙과 권한 |
출처: Leadbeater(2017). p.8
학습자는 여러 수준과 측면을 고려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주도성을 만들며 성장하게 됩니다. 학습자의 성장과 주도성 발달은 별개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 속의 참여를 통해 나타나기에 주도성은 가지거나 소유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학습자가 주도성을 발휘하는 것을 다른 행위 주체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역량의 모습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OECD 학습 틀 2030에는 새롭고 복잡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식, 기능, 태도 및 가치를 동원하는 능력인 역량의 중심에 학습자 주도성이 위치합니다. 그리고 역량의 발달 과정을 나침반의 형태로 그려내고, 그 나침반을 사용하는 학습자가 주변의 교사나 동료, 부모 등의 행위 주체와 함께 그려진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교육 실천 되돌아보기
1. 가르침과 배움을 하나로 보기
그동안 학습자 중심교육의 원리는 열린 교육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현장에서 실천되고 있으며, 협동 학습, 토의·토론 학습, 프로젝트 학습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교수·학습 과정은 학습자는 배제한 채 교사가 설계하며, 학습자는 교사가 만들어낸 구조에 단순히 참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습자의 역할과 가능성은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학습자 주도성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각 행위 주체가 동등한 차원에서 연결되어야 하므로 학습자에 대한 관점을 지금과는 다르게 보아야 합니다. 즉, 교사와 학습자 혹은 가르침과 배움을 대립해서 보거나 분리해서 보는 관점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교사가 학습자를 자신보다 부족하거나 열등하다고 보면 학습자의 목표는 성인이 정한 목적을 향하게 되고, 그곳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거나 주입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 경우 교사만이 주체이며, 학습자는 대상이 됩니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학습자를 통제하고 내용을 선택하며, 학습자들은 이를 따라야만 합니다.
반면, 학습자가 중심이 될 때에는 반대로 학습자가 교사보다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르침은 사라지고 배움만 남게 되며, 교사는 학습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조력자의 역할로 객체화됩니다. 따라서 교사와 학습자라는 주체 모두가 유능한 참여자로서 서로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목표나 내용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목표 설정 및 계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의미를 함께 구성해가는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습자는 주도성을 만들게 되며, 주도성이 만들어질 때 진정한 학습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협력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며 동시에 각자의 경험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르침과 배움을 하나로 보고 교사와 학생 모두 학습자이며 전문가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2. 학습의 과정에 초점 맞추기
우리는 지금까지 목표나 가르쳐야 할 내용을 중심으로 수업을 고민해 왔습니다. 하지만 듀이의 경험 이론을 떠올려 보면 성장이라는 것은 행위가 그 다음의 결과로 축적되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역량이라는 결과를 위한 과정의 차원으로 접근했을때 학습자의 주도성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학습자 주도성은 좋은 삶,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통해 궁극적 목적과 가치를 탐색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과정과 연결됩니다.
고시를 앞두고 있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는 주도성을 기르기 위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학교자율시간’을 도입하고 다양한 활동이나 과목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학습자가 배울 내용을 선택한다는 행위는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습자가 여러 과목들 중에서 한 과목을 단순히 선택한다는 행위 자체는 바로 경험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선택을 통해 참여자들이 함께 배울 내용과 관련하여 그 결과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즉 배울 내용을 선택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온전한 과정 자체가 학습자에게는 유의미한 경험이 됩니다. OECD(2018)는 학습 틀 2030에서 학습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학습자 주도성을 중심에 두고 주위에 변혁적 역량과 기대(Anticipation)-행동(Action)-성찰(Reflection)에 이르는 순환 고리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표 3>참고). OECD는 이 AAR 순환 고리를 역량 개발을 위한 방법이자 과정으로 제안합니다. 이는 역량 함양을 위한 과정이 곧 학습자 주도성을 기르는 내용이자 방법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표 3> AAR 순환 고리의 단계와 의미
단계 | 의미 |
예상(Anticipation) |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고, 자신과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며 자신과 타인의 관점을 넓히는 것 |
행위(Action) | (개인과 사회의) 웰빙이라는 방향에 맞게 행위를 취함 |
성찰(Reflection) | 사고를 증진하여 더 나은 이해와 웰빙을 향한 더 나은 행동을 이끌어 내기 |
출처: OECD(2019c), pp.5-6
우선 예상은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예측한다는 것은 학습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배움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 교사나 다른 행위자는 무엇이 학습자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모습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이에 대해 서로 간 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함께 도달해야 할 잠정적인 이상향을 그려갑니다. 행위에서는 구체적인 지식과 내용을 선정하고 조직하며, 교수-학습의 맥락과 연결 지어 잠정적으로 합의한 방향으로 함께 만들어가고 실행합니다. 이러한 양상은 어떠한 모습이든 정답은 없습니다. 프로젝트 수업이나 강의형 수업과 같은 방법이 옳고 그르냐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방향성은 일관되게 하되 상황에 맞게 적절한 방식을 실행해야 합니다.
성찰은 하나의 완결된 경험을 만드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잠정적 방향의 수정을 이루거나 더 나은 좋은 삶을 향한 다른 행동들을 이끌어 냅니다.
예상한 것이 빗나가 실패를 하더라도 이러한 실패는 다시 수정할 수 있으며, 다른 방법으로 시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학습자는 어떠한 것을 행위하기 위한 기반이자 결과인 역량을 증진하게 되면서 동시에 불확실하고 새롭게 변화하는 사회에 의미 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습자 주도성을 만들어냅니다. 띠라서 교육의 과정에서 학습자와 교사가 도달점을 함께 만들고 행동하면서 그 과정을 살피는 성찰은 꼭 들어가야 하는 기준이 됩니다. 앞으로는 수업에 앞서 배움의 끝에서 우리가 달라지는 모습을 상상하고 그 방향성을 지키며 수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든 수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모습을 위해 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은 학교 교육에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4. 나오며
학습자 주도성이라는 개념은 교육을 교사와 학습자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공동의 가치를 찾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만들어냅니다. 기존의 방식대로 우리가 강조해온 학습자 중심교육을 교사가 가진 자유를 학습자에게 이양하는 것으로 바라본다면 서로는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자유를 사용할 것인가를 넘어서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는 각 주체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주도성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모든 행위 주체들은 어떠한 규칙에 대하여 함께 받아들이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며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이에 교사의 지도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해집니다. 최근 교사 주도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따라서 학습자 주도성은 학습자라는 존재의 자발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세계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행동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기에 우리는 전보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교육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참고문헌>
교육부 (2021). “‘2022 개정 교육과정 주요 사항(시안)”. 교육부 보도자료(2021. 11. 24.)
Dewey, J. (1916). Democracy and education. New York: Macmilan, 이홍우 역 (2007). 민주주의와 교육(개정ㆍ증보판), 서울: 교육과학사.
Knowles, M. S. (1975). Self-directed learning: A guide for learners and teachers. San Franscisco: Jossey-Bass. Leadbeater, C. (2017). Student agency: Learning to make a difference. Centre for Strategic Education.
OECD (2005). The 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 encies: Executive summary.
OECD (2018). 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educati on 2030: Position paper.
OECD (2019a). OECD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2030
– Concept note: OECD learning compass 2030.
OECD (2019b). OECD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2030
– Concept note: Student agency for 2030.
OECD (2019c). OECD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2030
– Concept note: Anticipation-Action-Reflection cycle for 2030.
Zimmerman, B. J. (2002). Becoming a self-regulated lear ner: An overview. Theory Into Practice, 41(2). 6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