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철학과 만나다
정서적 고립이 만든 관계의 변화를 이해하기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성장학교 별 교장 김현수
1. 코로나 이후 증가한 학교폭력의 이유들
서먹하고 낯선 아이들로 가득한 학교
2023년 다시 학교폭력 신고가 늘었다고 한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몇 지역에서는 기록할만한 증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예측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장기간의 고립과 단절은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다양한 보고와 함께 아이들의 상태에 관한 여러 정보들은 다시 학교에 쉽게 적응하리라는 예상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절반 정도의 출석일을 2년간 경험했던 많은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다른 양태를 보였다.
첫째, 많은 선생님들이 이야기하듯이 아이들은 더 어리고 미숙하고 부족한 사회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경험의 부족 그 자체였다. 둘째, 집단으로서의 규범을 숙지하고 행동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학교는 신입생들에게 여러 의례를 통해 집단으로서의 규범이 몸에 배도록 하는데, 지난 2년간 그런 활동은 거의 없었다. 셋째, 사회기술의 부족과 집단 규범의 이해 감소는 문제 해결, 갈등 해결을 개인화했다. 즉 중재에 대한 기대나 갈등에 대한 과정이 이전보다 부족했고, 이에 대한 인내심이 사라졌다.
그래서 모두 신고하고 신고 이후 중재가 제공된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라는 환경이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만나기 힘들고,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쉬운 소셜 미디어에 기반해서 소통하는 등 코로나라는 환경은 의사소통에 더 큰 어려움을 주었다. 넷째, 아이들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집단간 문턱이 높아졌다. 더 텃세가 심해지고 아이들간의 벽이 높아서 아이들은 낯선 아이들과 더 힘들어했다.
우리가 학교의 전면등교와 함께 이런 갈등의 폭증을 대비했다면, 우리는 관계와 공동체를 강조하고 친절과 친밀을 목표로 학교를 운영해야 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내년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언제 벗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전면적인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시기와 그 이후에도 코로나 이후 새롭게 형성된 관계의 벽을 부수려면 새로운 가치를 학교 공기에 불어넣어야 새로운 평화의 호흡이 싹틀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 코로나 이후의 삶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전하는 학교에서의 에피소드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힘들다
관계가 힘들어졌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 몇몇 에피소드만 여기 소개한다.
# 모둠 짜기 힘들어졌다
학급에서 낯설음, 서먹함이 사라지지 않고, 서로 충분히 모르는 상태에서의 모둠 형성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부모님이 전화를 해서 모둠이 싫어서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 수학여행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아직 수학여행에 가서 화장하지 않은 얼굴과 맨살의 일부를 보여주는 일들이 어색하다고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선택은 수학여행 불참이다. 그냥 친한 애들과 놀이공원 정도면 지금 관계가 충분하다고 한다. 결정적 이유는 아직 그정도로 친해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 홀수인원으로 반편성 하지 말아주세요!
29명이 한 학급인데 14쌍과 마지막 1명 혹은 13쌍과 3명의 한조에 속한 그 3명 중 한명들의 비명소리가 높다. 그 무위의 순서, 즉 2명이 할 때 1명이 쉬어야 하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그 느낌을 아는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치열한 싸움도 일어난다. 그래서 그 1명으로 남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한다.
# 아직 짝꿍은 힘들어요!
코로나 이후 1줄로 앉은 채로 3년을 지냈다. 외로울까봐 전처럼 2인 1조의 짝꿍 대형으로 자리 배치도 돌아가려는 시도가 무참히 깨지기도 한다.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1인 대형이 좋다는 아이들,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아이들.
#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힘들다
아이들의 관계는 가뜩이나 피상적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코로나 이후 더 피상적 수준에서 겉돌고 있다. 그 겉도는 아이들의 입장은 딜레마 상황이다. 혼자 지내는 것은 외로워서 싫지만 함께 있을 때는 어떻게 친해지느냐, 누구랑 다니느냐, 싫을 때 어떻게 해야하느냐,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수없는 자기 물음과 상처에 대한 두려움으로 힘들다.
이 관계에서의 어려움이 아이들을 아주 괴롭히고 있다.
# 연애학원에 등록하다
이 피상적 관계에서의 괴로움이 미치는 영향은 연애에까지 이른다. 코로나 시기 아이들의 연애 경험은 더 줄어들었다.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는 아이가 내린 연애에 대한 대처 방법은 연애 학원에 등록해서 실패하지 않는 연애, 상처받지 않는 연애, 차이는 연애가 아니라 차는 연애, 성공하는 연애를 배우는 일이었다. 관계를 관계를 통해 배우면 너무 아파서 연애에 대한 선행학습을 하고 연애를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연애에 대한 꿈을 애시당초 꾸지 않는 초식남에 비해 연애 선행학습자가 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라고 말하는 대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3. 코로나 스트레스는 남학생, 여학생이 서로 달랐다
도피하는 아이들과 비난하는 아이들
코로나 시기에 스트레스를 푸는 양상에 따라 남학생이 힘든 것과 여학생이 힘든 것이 달랐다. 가장 힘들어하는 연령대도 달랐다. 코로나 시기 남학생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더 힘들었다고 보고 되었는데, 한마디로 뛰어노는 것이 한동안 금지된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론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들에게 ‘나가서 뛰어노는 것’은 많은 기능을 한다. 스트레스 풀기, 친구 사귀기, 규칙 익히기 등등. 이것이 중단된 이후로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들은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쇼파, 침대, 구석에서 풀었다. 스크린과 함께, 그래서 비만도가 높은, 나가서 놀기 싫어하는 초등학교 남학생이 대거 늘었다. 이들은 곧 청소년이 되면서 스마트폰 게임 혹은 인터넷 게임 중독자가 될 예정이다.
반면 여학생들은 초등학생보다 여중생, 여고생 등의 스트레스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들의 스트레스 풀기는 주로 ‘만나서 수다떨기’였다. 그런데 사춘기 여성들에게 만나서 수다떨기는 훨씬 많은 기능을 갖고 있었다. 경계 짓기, 소속집단 만들기, 정보 나누기, 비밀 이야기 공유하기 등 온라인 상으로는 할 수 없는 여러 활동이 만나서 수다떨기 안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지금 친구 사귀기가 아주 힘들어진 상태가 되었고, 혼자 지내다가 자해하고 자살시도까지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었다. 우울과 자해, 자살은 코로나 시기, 여학생들을 강력하게 침입했다.
4. 외로움, 그리고 친구에 대한 부모들과 아이들 사이의 머나먼 차이
외로움, 이것은 사회적 감정인가? 개인적 감정인가?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2018년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다’ 라는 뉴스 이후로 외로움은 개인이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는 선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가? 많은 한국 성인들의 외로움에 대한 반응은 ‘외로울 틈이 없다’라는 반응이다. 외로움에 대한 부정과 인지 부족이 어른이라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솔직히 만나는 것은 오히려 청소년들이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외롭다. 역사 이래 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의 수는 지금이 가장 적다고 인류학자나 발달학자들은 말한지 오래다. 우리는 과거보다 아이를 적게 낳고 있으며, 가족은 작아지고 확대가족의 역할도 미미해졌다. 이런 관계의 결핍을 어른들은 잘 모르고 아이들은 큰 구멍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외로움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코로나 시기 외로움의 크기는 한없이 커졌다.
한국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 2020년 조사한 청소년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외로움이었다. 청소년에 대한 도움은 이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친구들과 즐겁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우리나라 어른들은 이상하리만치 친구 만나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늘 수업과 공부부터 하자고 하고 집에서의 부모님들은 친구 만나는 것이 불필요한 행위인 것처럼 말한다. ‘친구를 만나면 친구가 돈을 주냐, 밥을 주냐’는 식의 부모 멘트는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청소년기의 친구는 가족 혹은 가족 이상이다.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가족은 적이 된다. 친구를 받아들여줌으로 인해 가족의 경계가 유지 된다.
코로나 이후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 역시 친구 문제다. 친구 문제로 상담받고 싶어하고 친구 문제로 괴롭고 죽고싶고 친구 문제로 행복해진다. 그것은 친구가 바로 가족을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 때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에 대한 재정의를 하지 못한 부모는 아마 아주 불편한 마음으로 지낼 가능성이 크다.
5. 코로나 이후 가장 중요한 회복은 무엇인가?
코로나 이후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관계이다. 사람들이 경험한 단절이 주는 효과는 전방위적으로 컸다. 우울과 불안도 관계로부터 시작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감도 관계에서 확인된다. 타인은 한편으로 지옥이지만 타인은 한편으로 존재의 근원이다.
관계를 회복하지 않았는데 성적부터 회복하라고 하는 말에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즐비하게 교실에 있는데, 대학에서도 한 학기를 건너가면서 다 함께 몸을 사용해 만나는 자리가 없었던 그 아이들에게 성적은 최우선일 수가 없다. 우리의 뇌 생리 또한 재난과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에 작동하는 방식이 학습 모드일 수 없다.
친밀하게 서로 연결되어서 소속감을 갖고 지낸다는 것은 큰 안정적 심리를 제공한다. 심리적 안정과 관계의 연결, 그리고 되찾은 평화가 마음을 물들여야 무언가 새로운 관심과 주의 환기와 함께 의욕이 샘솟을 수 있다. 다정한 인간들끼리 모여서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알아보고 다시 함께 서로를 보듬으면서 나가는 인간 군집의 한 단위 한 단위가 곧 세계이다.
돌봄이 없고, 경쟁만 있고, 타인을 적대시하는 장소가 많아지면 전쟁, 폭력, 불평등의 위기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가 알려준 진실과 교훈은 많다.
작은 학교 아이들이 더 건강하다
로컬 사회가 살아있는 사회는 죽지 않았다.
사회적 유대감이 높으면 더 안전하다.
지구는 위기이며, 이 위기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높은 사회와 아무 생각이 없는 사회가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지구 위기를 주제로 한 <Don’t Look up (돈룩업)>이라는 영화가 대중에게는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정책기획자들과 사회평론가들에게는 사뭇 큰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그것은 문제를 다루는 사회 지도자들의 행태를 잘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문제를 잘못 이용하는 사람들,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이익에 골몰하는 사람들로 인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관람을 권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코로나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다만 진실을 실천할 것이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과연 코로나로 인해 좋은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아님 이대로 살 것인가? 학교에서의 관계는 방관될 것인가? 우리는 언제 관계에 대해 배울 기회가 생길 것인가? 정말 중요한 살아있는 지식과 지혜는 학교 교육에서 무엇을 다룰 때 가능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