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철학과 만나다
맞춤형 수업을 위한 교사의 역할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 서명석
수업목표가 단일하게 고정된 상태에서 모든 에너지가 그곳을 향할 때
맞춤형 수업을 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 우리를 둘러싼 담론의 풍향계
우리 수업은 우선 수업목표를 설정한다. 그런 다음 교사는 그의 에너지를 오로지 수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쓴다. 이것은 완벽한 목표-중심주의이다. 요즈음 학생-중심 교육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때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의 학습조력자로서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학생-중심주의이다. 그러나 다시 보라. 이 세상에 중심은 없다. 있다면 중심이 없다는 그 사실만이 중심이다. 우리가 중심주의에 빠지는 바로 그 순간 우리 모두 모더니즘의 희생양이 된다. 탈-중심주의 그것만이 중심이다.
1. 현행 수업 세계 비판
우리 교육을 비판할 때 획일성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물으면 잠시 주저하며 대답을 회피해 버린다. 지금 이 지점에 문제틀(problématique)이 자리한다(서명석, 2015: 117).
현행 우리 교육의 고질적 문제는 단위 수업 시간에 수업목표를 설정에 놓고 그 수업 시간 동안 오로지 수업목표의 달성에만 올인한다는 점이다. 이러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학생들의 개인차의 문제는 미지항으로 두거나 수업의 고려 사항에서 목표에 밀려 후 순위로 떨어진다. 이것은 목표-중심주의라는 모더니즘의 망령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수업을 오로지 목표 달성이라는 과학적 효과주의의 미명으로 설계된 타일러의 유산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파르마콘(pharmakon)이다! 이때 파르마콘이란 약이면서 독이라는 뜻이다. 파르마콘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중적 양가성을 가지고 있다.
목표-중심주의의 약은 단기적으로 효과/효율을 배가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목표-중심주의의 독은 효과/효율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개인차는 그 독성에 굴복한 채 자취를 감춘다. 비록 수업을 설계할 때 개인차의 문제를 고려하였다 하더라도 목표라는 중량이 너무 무거우면 중심추는 개인차보다는 목표로 급격하게 기운다. 그러면서 개인차는 수업목표에 눌려 질식 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수업에서 목표-중심주의가 강성하면 학생들은 모두 수업에서 동일한 수업목표 달성에만 매진하는 거대-담론(meta-narrative)에 빠진다(Slattery, 2013: 303; 서명석, 2016: 124-127). 이것이 교육에서의 표준화를 만들고 이것은 다시 교육에서 동일성의 신화를 써 내려가며 종국적으로는 교육에서 획일성의 수렁으로 미끄러진다. 즉 표준-화(standard-ization) → 동일-성(same-ness) → 획일-성(one-ness)으로 말이다.
2. 맞춤형 수업 정의
맞춤형 수업은 학계에 공인받은 학술 용어가 아니다. 그러나 이에 정확히 상응하는 용어가 있다. 그것이 바로 DI(Differentiated Instruction)이다(Drapeau, 2004; Tomlinson & Imbeau, 2010; Gregory, 2011; Gregory & Chapman, 2013). 여기서 DI를 우리말로 바꾸면 <차이성을-이끌어-내도록-설계한-수업>이다. 이때 차이성(difference)은 아이들의 서로-다름[相-異]인 곧 개인차인 것이다.
DI의 대전제: 아이들은 다 다르다
(All children are different)!
이러한 명제를 수업에 반영한 것이 DI라고 보면 틀림없다. 여기서 우리는 수업이라는 용어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아래 그림을 보자.
[그림 1] 교육과정과 수업 및 교수-학습의 위상(서명석, 2016: 33)
위 그림을 보면 교육과정의 맞은편에 수업이 자리하고 학습의 맞은편에 교수가 자리한다. 이때 세로선의 맨 아래 Instruction도 수업이고, 가로선의 왼쪽에 있는 Teaching도 수업이다. 다만 조심해야 할 점은 교수-학습(teaching-learning)과 같이 하나의 짝-개념(pair-concept)으로 Teaching이 있을 때는 Teaching을 교수로 번역하지만, Learning과 독립하여 Teaching을 단독으로 쓸 때는 Teaching을 교수로 번역하지 않고 수업으로 번역한다. 이렇게 개념을 교통 정리하면 Instruction도 수업이요 Teaching도 수업이다. 이렇게 같은 수업이라 하더라도 Instruction은 교육과정에 기반하여 자신의 수업을 설계한다는 활동에 방점이 찍히고, Teaching은 설계한 수업(instruction)으로 교사가 교실에서 가르치는 실제 활동에 방점이 찍힌다. 따라서 교실에서 교사가 수업(teaching)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수업(instruction)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제 DI를 더 세밀하게 보자. 교사가 DI를 하라. 이러한 명령문은 교사가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DI를 드러내는 세 가지 언표(言表)의 3단 변주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DI를 완성할 수 있다. 그러니 교사들이여! ① ‘수업(instruction)’을 ‘학습자의-수준에-맞추는-작업[customizing → fitting → tailoring]’을 하여 ② ‘수업(teaching)’을 실천하라. 그것만이 구원이다.
3. 맞춤형 수업 설계
병원에 환자가 오면 의사는 환자를 대상으로 종합적으로 ① ‘진단’한 뒤 ② ‘처방’하고 ③ ‘치료’한다. 교사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활동을 똑같이 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의료모형[① 진단 → ② 처방 → ③ 치료를 행하는 일련의 과정]이다(서명석, 2020a: 796). 이때 ①과 ②가 수업(instruction)이고, ③이 수업(teaching)이다!
우선 우리가 아이들에 대하여 진단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각자 아이들의-잠재적인-소질과-능력[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entelecheia로 정리함]을 점검하는 일이다(서명석, 2017: 53-54). 그런 다음 각자 아이들의 심리적 양상을 확인해야 한다. 그럴 때 심리적 양상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Gregory & Chapman, 2013: ⅹⅲ).
# 아이들의 심리적 양상 중 대표적인 세 가지
- 발달 정도(readiness)
- 흥미도(interests)
- 선호도(preferences): 선호하는 인지 양식+선호하는 지능
(더 구체적인 정보를 보고 싶은 독자는 Tomlinson과 Imbeau(2010: 16-18)를 참고하라.)
DI를 위한 필수 요건(sine qua non)은 <① entelecheia 체크-업! + ② readiness 체크-업! + ③ interests 체크-업! + ④ preferences 체크-업!>이다. 이때 체크-업(check-up)은 완벽한 점검 및 확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DI를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①∼ ④라는 ‘기초자료를-확보(data-work)’한 후에 그 위에다 수업(instruction)이라는 집을 짓고 그 수업(teaching)안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교사가 3학년 1반을 맡고 있는데 그 학급에 아동의 수가 15명이라 하자. 그러면 거기에는 15개의 entelecheia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 교사는 15개의 프로파일-북(profile-book)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안에 아주 상세하게 아이들의 심리적 양상을 빼곡하게 기록한 자료 더미가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표 1> 두 수업 양상의 비교
기존의 재래적 수업 | 탈-재래적 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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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목표 확인 • 수업목표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업 모형 구안 • 수업 실시 • 단일 수업목표 달성을 최우선시함 |
• 실제 수업 전에 DI 설계 • 수업 시 주제에 따른 각자 활동 장려 • 수업목표를 다변화하여 단일 수업목 표 제시 지양함(서명석, 2020b: 449) • 실제 수업의 과정이 개인의 차이성을 극대화하는 데 강조를 둠 |
- 단일 수업목표-중심주의에서 벗어나라.
- 단일 수업목표 달성이 수업의 전부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 수업을 진행하면서 목표[국가교육과정의 성취기준]도 바라보고 아이들의 숨은 차이성도 동시에 바라보라.
그럴 때 DI가 교사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리라. 그간 우리는 수업에서 단일하게 설정된 수업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차이성을 놓쳤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표[국가가 설정해 놓은 성취기준]도 볼 수 있고 아이들의 차이성도 볼 수 있는 쌍안(雙眼)의 혜안(慧眼)이겠다.
4. 마무리
교육현장에 교육과정과 수업을 바라보는 오개념이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다. 그것은 이런 것들이다. 교과서와 지도서가 교육과정이라는 착각, 교사 자신이 교육과정의 개발자와 운영자가 아니라는 인식, 실제 수업이 이미 완제품의 형태로 가공하여 각종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자료들을 다운로드 후 적절히 재구성하여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미신 등이다.
그러나 잘 보라. 교과서와 지도서는 교육과정이 절대 아니다! 그것들은 국가교육과정을 가르치도록 선보인 다양한 자료 중의 하나일 뿐이다. 절대 과신은 금물이다. 다시 숙고해보라. 국가교육과정은 하나이지만 교사가 만들어가는 교실교육과정은 교사 수만큼 존재한다. 이 말은 교사 자신이 교실교육과정의 주체적인 개발자이자 운영자라는 뜻이다. 이미 만들어져 제공해 놓은 각종 수업자료를 맥을 놓고 따라다니지 말라. 그리고 그것들이 제시하고 있는 수업목표도 맹신하지 말라.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들이 제시하는 수업목표가 국가가 정해놓은 성취기준과 무관하거나 그것을 과도하게 오독하고 제시해 놓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에 탑재되어 있는 국가교육과정과 영원한 친구가 되라. 그러면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뒤 나만의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수업을 운영하라. 항상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때 두 마리의 토끼는 <① 국가교육과정의 성취기준 + ② 아이들의 차이성을 반영한 DI 실행>이다.
이제 변해야 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 교사양성대학이 있다. 그래서 정책 제안을 하고자 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 한 가지를 제시해 보겠다. 교육대학에서 학생들이 이수하고 있는 교과교육1, 2의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꾸어라. 교과교육1에서는 교대생들에게 교과별 국가교육과정의 이론체계를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교과교육2에서는 교과교육1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역량을 길러주고 이 과정에서 DI를 실행하는 방법을 연마하도록 하라. 이것이 본연의 모습이다. 더불어 현장 교사들도 자신만의 교육과정과 수업을 창조하도록 정진하라. DI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다. Utere felix(읽고 행복하시길)!
참고문헌
서명석(2015). 아동, 넌 누구냐? 용인: 책인숲.
서명석(2016). C&I 교육과정과 수업의 탈주선. 용인: 책인숲.
서명석(2017). 퇴율공부법과 현대교육 비판. 용인: 책인숲.
서명석(2020a). 철학치료의 자리매김.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20(18), 789-804.
서명석(2020b). 초등학교 학생의 창의성 발달을 저해하는 환경요인에 대한 성찰: 가정의 놀이문화와 교실의 수업문화를 중심으로. 교육문화연구, 26(6), 441-455.
Ainsworth, L., & Donovan, K. (2019). Rigorous curriculum design (2nd ed.). Rexford, New York: International Center for Leadership Education.
Drapeau, P. (2004). Differentiated instruction: Making it work. New York: Scholastic Inc.
Gregory, G. H. (Ed.) (2011). Differentiated instruction. Thousand Oaks, California: Corwin.
Gregory, G. H., & Chapman, C. (2013). Differentiated instructional strategies (3rd ed.). Thousand Oaks, California: Corwin.
Joyce, B., Weil, M., & Calhoun, E. (2015). Models of teaching (9th edi.). Boston: Pearson.
Slattery, P. (2013). Curriculum development in the postmodern era (3rd edi.). New York: Routledge.
Tomlinson, C. A., & Imbeau, M. B. (2010). Differentiated Classroom. Alexandria, Virgina: AS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