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 중심 수업에서
‘수업’의 의미 생각해보기
인하대학교 교수 정기섭
학습자(학생) 중심 수업
학습자 중심 수업은 교사 중심 수업과 대척점에 서 있는 용어이다. 학습자 중심이란 용어의 사용에는 기존의 교육과 구별되는 새로운 교육 실천을 위한 학교교육개혁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학습자 중심 교육이 학교교육개혁 방안의 하나로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95년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에서라고 할 수 있다. 학습자 중심 교육을 교육개혁방안의 하나로 제안하였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때까지 학교 교육의 중심에는 교수자(교사)가 위치하고 있었고, 학습자(학생)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교수자와 학습자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교육다운 교육으로 바꾸자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학습자 중심 수업은 수업에서의 무게추가 교사에게서 학생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하고, 교수자 중심 수업보다는 더 교육적인 것으로 읽힌다. 그러므로 학습자 중심 수업은 수업방법에서의 변화를 포함한다. 교수자 중심으로 특징되는 전통적인 수업은 학생이 무엇을 학습할지, 그리고 어떻게 학습할지를 교수자가 선택하고, 학습자는 그것을 따르는 수동적인 수행자의 역할을 하였다. 이와 달리 학습자 중심 수업에서 학생은 자신의 흥미와 관심, 능력에 따라 무엇을 배울지, 어떻게 배울지를 선택하는 능동적인 참여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학습자 중심 수업은 특정한 수업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수업 형성에서 학생에게 더 많은 참여와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다양한 수업시도들을 대표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Wagner, 1987). 이러한 관점에서 학습자 중심 수업의 아이디어는 최근의 것이라기보다는 “아동으로부터의 교육”을 표방하며 19세기 말부터 세계적으로 전개된 신교육운동의 흐름에서 시도되었던 열린 수업, 프로젝트 수업, 토론 수업, 질문 중심 수업, 노작 수업 등과 같이 학습자가 능동적인 주체로 수업에 함께할 수 있도록, 즉 수업의 과정이 학습자의 경험을 위해 열려있도록 설계된 수업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업들은 지식전달보다는 학습자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 발달해 가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이때 학습자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는 고유한 존재이기 때문에 학습자 중심 수업은 개별 학습자의 흥미, 능력, 학습 스타일을 고려하면서 학습을 지원하는 촉진자로서의 교사 역할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 중심 수업이 개인주의적인 수업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학생 중심 수업은 신교육운동의 흐름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습자 간의 상호협력 경험을 통해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인간적인 품성과 능력을 기르는 수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학습자(학생) 존재와 ‘교육적인 것’
학습자 중심 수업이 교수자 중심 수업보다 교육적이라는 사고에는 학습자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교육의 역사에서 학생(학습자)은 오랫동안 교사(교수자)에 의해 타율적으로 학습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교육에서 체벌과 억압과 같은 교사의 외적인 영향력이 중요하게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인식에서 교수자-학습자의 관계도 권위적, 수직적, 일방적인 것이 당연시되었다. 17세기에 교수자-학습자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등장하였으며, 그 후 무게 중심이 점차 학습자에게로 옮겨갔다. 19세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전통적인 학교 교육을 비판하면서 전개된 신교육운동의 “핵심”은 학습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학습자는 자발적 의지와 자기 결정 능력을 가진 고유한 존재로서 이해되며, 이러한 이해는 이후에 교육의 자율성에 관한 논의에서 “교육적인 것”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딜타이(W. Dilthey, 1833-1911)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교육학자 노올(Herman Nohl, 1879-1960)은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유한 이념을 밝혀내기 위해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 잘츠만, 프뢰벨, 헤르바르트,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등의 이론을 고찰한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교육에 대한 이해가 20세기 전후에 리츠, 오토, 비네켄, 몬테소리 등에 의하여 신교육운동으로 전개되었고, 그들에게는 동일한 것이 있다고 해석한다(Nohl, 1988: 156 이하). 이 동일한 것을 노올은 “진정으로 교육적”이라고 표현하는 데(Nohl, 1988: 160), 이것은 새로운 아동 이해에 기초한 교육이해와 교수자-학습자의 관계이다. 결국, 교육적인 것은 어른에게 구속된 전통적인 아동 이해와 그에 기초한 교수자-학습자 관계로부터 주체적이고 고유한 존재로서의 아동 이해와 그에 기초한 교수자-학습자 관계로의 전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교육적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동의 주체적인 삶”이 우선 고려되고 있느냐의 여부이다(Nohl, 1988: 160).
그렇다면 이러한 교수자-학습자 관계에서 교수자의 역할은 축소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딜타이에 의하면 “교육은 성인이 성장하는 사람의 정신적 삶을 형성하는 계획적인 활동”이다(Dilthey, 1961: 2). 이때 계획적인 활동으로서의 교육은 성장하는 세대에게 가하는 성인의 일방적인 영향력 행사와 그에 대한 반응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삶은 완전성을 향해 전개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 교수자는 성장하는 세대인 학습자를 수단으로 다뤄서는 안 되고 그의 내부에 있는 “자기 목적”을 존중해야 한다. 완전성을 지향하는 정신적인 삶은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의 내부에 일반적으로 놓여있는 조건”이다(Dilthey/손승남 역, 2008: 66). 다시 말하면, 정신적 삶의 목적론적 전개는 문화 역사적으로 조건된 삶의 목적(목표들)보다 앞서서 존재하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이 정신적인 삶을 형성하는 활동이라는 것은 사회 문화적 현실 속에 있는 피교육자가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딜타이에 앞서서 교육을 세대 간의 관계에서 파악한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에게 있어서도 교육은 성장세대의 자기 활동성이 전개될 수 있는 여지를 보증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에 의하면 교육의 대상인 아동은 “자기 스스로 고유한 힘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하는 생명체”이다(Schleiermacher, 1957: 98). 스스로 발전하려는 힘으로서 자기 활동성 그 자체는 아직 어떠한 방향으로의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교육은 자기 활동성이 내용을 갖도록 기성세대가 성장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기성세대가 미치는 영향은 인간이 역사성을 가진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윤리 도덕적 삶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이해로부터 학습자 중심 수업은 학습자 스스로 발전하려는 힘인 자기 활동성이 훼손되지 않고 전개될 수 있는 자유로운 교수자-학습자의 관계에 토대를 두어야 하지만, 자기 활동성의 방향과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는 교육자의 역할을 전제하여야 한다.
수업의 개별화와 내적 분화
어떻게 하면 수업에서 학습자가 자기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학습자에게 적합한 학습형태를 제공하고 개인적인 학습 과정을 도울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수업의 개별화와 관련되는데, 수업의 개별화에 관한 노력은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의 프레네 학교나 독일의 헬레네-랑에 학교와 같은 대안학교에서 프로젝트, 자유주제 학습, 열린 학습, 주간계획표에 의한 학습의 형태로 나타난다. 주간계획표에 의한 학습은 학생들의 다양성을 고려하기 위한 것으로 학생이 자신의 재능, 흥미와 관심, 학습 접근방법, 학습 속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학습의 내용과 범위를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진행해 간다. 일주일에 정해진 시간 범위에서 학생은 교사와의 약속하에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학습 수준과 범위를 정하고 그것을 실행해 나가고 교사는 후에 그것을 점검하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학생 개인에게 적합한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수업의 ‘외적 분화’와 ‘내적 분화’를 생각할 수 있다. ‘외적 분화’는 학생들을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교실로 분리하여 수업하는 것이고, ‘내적 분화’는 교실을 분리하지 않고 모든 교과에서 학생들이 모둠을 이루어 서로 도와가며 함께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한 두 학교는 ‘내적 분화’를 선택하고 있는데, 이는 한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내용적·방법적 수준이 제공되어 개별 학생이 구별되는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교실에서는 모둠별로 과제의 수준과 제공되는 재료들을 달리하면서 학생들의 능력과 발달 가능성, 요구에 맞는 개별적이고 차별화된 수업 활동이 행해진다. 이렇게 개인별로 차별화된 수업 활동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집중해서 자신에게 부여된 주제를 가지고 작업할 것, 학생들 간 서로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것, 스스로 통제할 것이 전제조건으로 요구된다.
학습자 맞춤형 수업(차별화된 수업)은 학년, 능력, 공간에 의한 외형적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공동으로 함께 학습하면서 교사에 의해 자신들에게 적합한 지도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교사들은 성취수준이 낮은 학생들에게는 기초이해를 위한 추가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어떤 주제에 아주 흥미 있는 학생들에게는 추가적인 주제들을 계속해서 행하게 할 수 있다.
수업의 지향점은 학습이 아닌 교육
오늘날 수업은 시대변화와 사회적인 요구에 따라 개개인의 능력에 맞는 다양한 교육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요청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학습자 스스로 형성하는 힘’보다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 형성시키려는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상당수의 부모와 교사들은 학습하는 주체보다는 가르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업은 교육보다는 학습으로 이해된다. 교육은 학습자의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활동이지만,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학습 개념은 연습이나 경험의 결과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기능적 활동이다. 즉, 학습은 성적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 설정하고 그것을 위한 반복적인 연습과 경험을 학생에게 제공하는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학습자 중심 수업이 ‘수업’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이상 기능적인 학습과는 달라야 한다. 수업이 “학습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학습자의 내적 및 외적 조건을 체계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면(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5: 400), ‘교육적인’ 수업의 결과는 기능적인 학습이 아닌 ‘교육적인’ 학습이어야 한다. 교육적이지 못한 수업과 교육적인 수업에 대해 교육사상가인 헤르바르트(J.F. Herbart, 1776-1841)는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다음의 차이를 분명하게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얘기하려고 하지 않는 수업은, 우연히 들은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 있으나 마나 한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얘기하려고 하는 수업은, 학습자의 인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식, 그러한 지식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수업은 사람의 의식을 원하는 수준만큼 바꿀 수 있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김창환, 2002: 52)
헤르바르트에 의하면 수업은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서 경험은 인간의 정신 활동을 통하여 “구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적 수업의 핵심은 다양한 수업내용을 “결합시키는” 사고 활동과 관계한다. 그러므로 단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비교육적 수업과는 구분된다. 수업에서의 이러한 사고 활동은 학생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학습자 중심 수업은 학습자가 흥미와 관심이 없던 주제에 대해 사고 활동을 통해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하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
“교사들이 효과적으로 강의하기 위해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수업원칙이다. 이 원칙에서는 수업이 목적이고, 흥미와 관심이 수단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이제 바꾸어져야 한다. 수업은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기여해야 한다. 수업은 일정 기간만 진행되지만, 흥미와 관심은 학생의 일평생의 삶 동안 유지되어야 한다.”(김창환, 2002: 5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학습자 중심 수업이 문제해결 능력, 창의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의사소통 능력, 융합적 사고능력, 타인과의 협업 능력 등 오늘날의 삶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기여해야 하지만, 그 지향점은 기능적 학습이 아닌 인간 교육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적인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수업의 조정자는 교수자이므로 학습자 중심 수업에서 학습자가 자기 활동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전개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교육자로서 교수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창환(2002). 헤르바르트. 서울: 문음사.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1995). 교육학 용어사전.
정기섭(2022). 교육적 관계에서 ‘공간의 공유’에 관한 고찰. 교육혁신연구, 32(3), 103-126.
Dilthey, W. (1961). Deskription des Erziehers in seinem Verhältnis zum Zögling. In: Kluge, N.(Hrsg.)(1973). Das pädagogische Verhältnis.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18. Original Text: Wilhelm Dilthey. Gesammelte Schriften. Bd.9. Geschichte und Grundlinien des Systems. 3. unveränderte Aufl. B.G. Teubner/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1, 190-204.
Dilthey, W. /손승남 편역(2008). 딜타이 교육학 선집. 서울: 지만지.
Nohl, H. (1988). Die pädagogische Bewegung in Deutschland und ihre Theorie. 10.Aufl. Frankfurt a.M.: Vittorio Klostermann.
Schleiermacher, F. (1957). Pädagogische Schriften. Bd.1: Die Vorlesunge aus dem Jahr 1826. Unter Mitwirkung von Theodor Schulze. Hrsg. von Erich Weniger. Düsseldorf und München: Helmut Küpper.
Wagner, A.c.(1987)(Hrsg.). Schülerzentrierter Unterricht. München, Berlin, Wien: Urban & Schwarzenberg.